삼국시대 이후 혼란기에 다시 등장한 후삼국 시대는 궁예, 견훤, 왕건이라는 세 인물이 주도한 시대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견훤(甄萱)**은 가장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히는데요, 미천한 농민 출신에서 후백제의 왕으로까지 올라간 그의 인생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견훤의 일생과 그의 정치, 그리고 역사적 평가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농민에서 장수가 되기까지
견훤은 867년경 경상도 상주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확한 출신 성분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료는 그가 평민 또는 농민 출신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사적 재능과 지도력으로 신라의 지방군에서 빠르게 성장했고, 결국 장군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후백제의 건국
당시 신라는 왕권이 약화되고 지방 호족들의 반란이 이어지는 혼란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견훤은 이 틈을 타 자신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고, 900년 경에는 **완산주(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선포합니다.
그는 고구려를 계승한 후고구려(궁예)와 달리 백제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왕조를 열었으며, 당시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강력한 지도자, 그러나 가혹한 아버지
견훤은 용맹하고 뛰어난 전략가였지만, 동시에 냉혹한 통치자이기도 했습니다. 백성에게는 철저한 규율과 질서를 강조했고, 주변의 반란 세력은 가차 없이 진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 가정 내 불화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여러 아내와 자식을 두었는데, 특히 장남 신검과의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결국 935년, 신검은 견훤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합니다. 견훤은 유폐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해 고려의 왕건을 찾아가 항복하고, 이후 고려 군과 함께 아들 신검을 공격하여 후백제를 무너뜨리는 데 협력합니다.
최후와 역사적 의미
견훤은 왕건과의 동맹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의 생애는 하층민 출신이 영웅으로 떠오르고, 다시 아들의 손에 의해 몰락하는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후삼국의 균형을 이루며 고려의 통일을 앞당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뛰어난 전략가이자 군사 지도자로서 후대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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