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55

(역사)1962년 중인전쟁 무력충돌로 번진 인도와 중국

2025년 기준 현재 인도와 중국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실제 카슈미르와 아루나찰프라데시 일부 영토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상태이면서, 중국의 과도한 팽창을 막기 위해 미국과도 긴밀히 협력하는 상황이죠. 실제 1962년에 국경분쟁을 이유로 전쟁이 벌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20세기 아시아의 역사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인 1962년 중국-인도 전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전쟁의 배경1.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국경선중영 조약의 모호성으로 인해, 영국 식민지 시절 설정된 맥마흔 라인(McMahon Line)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중국은 이를 부정하고, 아크사이친(Aksai Chin)과 아룬찰 프라데시(당시 NEFA) 지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했습니다.2. 달라이 라마 망명..

(역사) 제 2차 왕자의 난과 태종이 펼쳤던 정책들

제1차 왕자의 난 이 후 정도전과 방석 세력은 제거되었지만, 누가 조선을 통치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치열한 권력 투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싸움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남은 형제들과의 갈등이 계속됐고, 결국 또 한 번의 유혈 사태가 벌어지게 되죠. 정종의 즉위 이 후,이방원이 태종이 되면서 권력을 단단히 하기 위한 정책들의 대해서 알아봅시다.⚔️ 제2차 왕자의 난 (1400년) – 형제 간 마지막 격돌1. 정종의 즉위와 내부 갈등제1차 난 이후 왕이 된 **정종(이방과)**는 이방원의 형이었지만 실권은 이방원이 쥐고 있었습니다.하지만 또 다른 형제인 **이방간(셋째 형)**이 실권을 잡으려 하면서 갈등이 고조됩니다.2. 이방간의 반란이방간은 무력을 일으켜 정변을 시도합니다.하지만 이방원은 이미 ..

(역사)새마을운동 진행과 급속한 발전

한국이 급속한 발전을 이룬 것에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외에도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농촌 개발 운동인 새마을운동이 빠질 수 없죠.이 운동은 단순한 개발 프로젝트를 넘어 ‘자립, 자조, 협동’이라는 정신을 기반으로 한 국민 참여형 운동이었고, 현재는 개도국 발전 모델의 상징으로까지 자리잡았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나라가 롤모델로 삼았을까요? 🏡 새마을운동이란?새마을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로 시작된 범국민적 농촌 개발 운동입니다. 1960년대 말, 농촌은 극심한 빈곤과 낙후된 환경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국가 차원의 농촌 근대화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죠.📈 새마을운동의 전개 과정1. 시범 마을 선정 (1970년)정부는 전국 33,000여 개 마을..

(역사)조선의 태자, 이방원의 난과 그 결말

조선 왕조가 건국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는 다시 격동의 시대가 들어서게 됩니다. 바로 정종(2대 왕) 시기, 이방원(훗날 태종)이 주도한 왕자의 난이죠. 이 사건은 단순한 형제 간 싸움이 아닌, 새 왕조의 권력 구조를 결정짓는 역사적 분수령이었습니다.이방원의 난, 그 과정과 결말을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1. 배경 – 조선 초 왕권의 불안정1392년 조선이 건국될 때, 창업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이방원은 큰 공을 세웠습니다.하지만 개국 직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신진 사대부 세력이 부상하면서, 이방원과 이들의 관계는 빠르게 악화되었습니다.정도전은 왕권보다는 신하 중심의 정치 체제(재상 중심)를 추구이방원은 스스로 강력한 왕권 확립을 꿈꿨음태조 이성계는 둘째 부인 강씨 소..

(역사)조선이 한반도 영토를 회복했던 과정

1392년,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국가 체제를 만들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은 단순히 정권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반도 전역의 영토를 회복하고 질서를 정립하여 중앙집권적 통치 기반을 재정비하며 진정한 의미의 ‘통합 국가’를 만들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조선이 어떻게 한반도를 회복하고 재정비했는지, 그 정치적·군사적·제도적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1. 혼란의 유산, 조선이 마주한 현실조선은 고려 말의 혼란, 외세의 침입, 권문세족의 횡포로 국토와 사회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출발했습니다.농지 분배의 불공정, 광대한 권문세족의 토지 소유지방 통제력의 붕괴와 호족 중심의 지역 세력 강화민심은 피폐해졌고 행정과 군사 조직도 무력화조선은 이 문제들..

(역사)희대의 결정 위화도 회군

조선 건국의 초대 왕이였던 이성계는 고려의 중요 무신중 하나였습니다.1388년 명을 받고 북진하던 이성계는 자신의 인생의 중요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위화도에서회군하여 고려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릅니다.앞서 설명드렸던 고려의 위기 및 조선의 건국에서 위화도 회군은 아주 중요한 사건인데이 위화도 회군의 상세한 전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배경: 고려 말, 불안정한 정권14세기 말, 고려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의 부패와 관리들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었고, 백성들은 과도한 세금과 빈곤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원나라의 간섭과 왜구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새롭게 부상하면서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도 급변하고 있었습니다.1388년, 명..

up sense travel 2025.04.25

(역사) 떠오르는 해 조선 왕조의 건국

조선 왕조(1392~1897)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근접한 역사중 하나입니다.한반도를 통치하면서 수도인 한양(지금의 서울)을 비롯하여 여러 유교적 문화와 음식 많은 것이현 한국 문화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죠.이성계라는 떠오르는 해가 어떻게 조선을 건국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배경: 고려 말의 혼란14세기 말, 고려는 내부적으로 권문세족의 부패와 외부적으로 원나라와 왜구의 침략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중앙 정부의 권위는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진사대부라 불리는 새로운 지식인 계층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유교를 기반으로 한 개혁을 주장하며 고려 체제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이 시기에 이성계(1335~1408)는 군사적 공로로 주목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

(역사) 고려, 그 끝 의 결말

몽골 제국과의 전쟁과 무신정권 수립으로 굉장히 좋지 않았던 고려의 상황항쟁과 더불어 민생은 나아지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화 되었습니다.그러던 중, 신흥 무장 세력인 이성계라는 별이 나타나면서결국 고려는 먼 역사속 한페이지에 장식되게 되는데,그 멸망의 시작과 끝에 대하여 설명드리고자 합니다.1. 고려 말의 내부 상황 – 혼란과 갈등의 시대권력의 분열과 정치 부패고려 후기로 갈수록 문벌 귀족과 권문세족이 국가를 장악하며 왕권은 약화되었습니다.이들은 땅과 백성을 독점하고, 농민들은 토지 수탈과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게 되죠.민심의 동요와 농민 반란14세기 중반부터 **홍건적의 침입(1359, 1361)**과 왜구의 약탈이 심화되며 백성들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졌습니다.이 틈을 타 곳곳에서 농민 반란이 발생했고, 고..

(역사)고려와 원나라, 30년간 이어진 긴 전쟁

고려는 요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아픔을 겪었지만 그보다도 큰 아픔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었습니다.몽골제국이 중국을 집어 삼키고 고려를 노리기 시작했는데결국 고려는 몽골 제국에게 패배하여 결국 부마국으로 편입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고려와 몽골제국 , 고려와 원나라 그 전쟁의 전개와 결말을 알려드립니다. 전쟁의 배경 – 세계를 뒤흔든 몽골, 고려를 넘보다13세기 초,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은 유라시아 전역을 정복하며 전례 없는 제국을 형성합니다.고려는 당시 무신 정권 하에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이를 틈타 몽골은 고려에 조공과 복속을 요구하게 됩니다.고려는 이에 응하지 않고 강경한 대응을 선택하며 결국 전면전이 시작됩니다.전쟁의 전개 – 6차례의 침입과 고려의 전략1차 침입 (1231년)몽골군은..

(역사)고려의 주요 전쟁

통일 후 고려는 이전의 다른 나라처럼 외부 세력과의 충돌이 잦았습니다.고구려의 땅을 회복하기 위함도 있으며, 외부 세력이 침입하는 경우도 많았지요.수 많은 전쟁 중 굵직굵직한 전쟁은 어떤것이 있었는지 알아보려 합니다.1. 거란과의 전쟁 (요나라와의 1·2·3차 전쟁)전개 과정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까지 고려는 북방의 강국 **거란(요나라)**와 세 차례에 걸쳐 큰 전쟁을 치렀습니다.1차 침입(993년): 거란이 고려를 압박하며 침입. 이때 서희가 외교담판을 통해 강동 6주를 얻고 전쟁 없이 위기를 넘김.2차 침입(1010년): 강조의 정변을 이유로 거란이 개경을 함락시킴. 고려는 수도를 버리고 항전하는 전략으로 버텨 거란군 철수.3차 침입(1018~1019년):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에서 대승을 거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