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sense History(역사 공부) 64

(역사)통일신라가 삼국 통일 후 가장 먼저 시행한 내부 정책

676년,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고구려·백제의 옛 영토 대부분을 장악하며 사실상의 한반도 통일을 달성합니다.이제는 전쟁이 아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죠.그렇다면, 통일을 이룬 신라가 가장 먼저 시행한 주요 내부 정책은 무엇이었을까요?그 핵심은 바로 지방 행정 통합과 민심 안정을 위한 제도 정비였습니다.1. 9주 5소경 체제의 정비통일 직후, 신라는 기존의 삼국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합하고 관리하기 위해가장 먼저 행정 구역 개편에 착수합니다.📌 9주(州) 제도신라는 전국을 **9개의 주(지방 행정 단위)**로 나누고,각 주에 **총관(후에 도독으로 바뀜)**을 파견하여 중앙의 통치를 강화합니다.이 9주는 신라 본토 + 백제 + 고구려 옛 땅을 포괄합니다.대표 주지역상..

(역사)나당전쟁에서 시작된 통일의 길, 통일신라의 탄생 이야기

한국사에서 '통일신라'라는 단어는 삼국 시대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안정된 왕국을 이룬 시기를 상징합니다.하지만 그 통일은 평화롭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삼국의 치열한 외교와 전쟁, 그리고 자주를 향한 투쟁의 결과였습니다.이번 글에서는 나당전쟁을 시작으로 신라가 어떻게 통일국가로 나아갔는지과정별로 살펴보겠습니다.1. 나당동맹의 형성과 배신📌 왜 손을 잡았을까?7세기 중반,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압박에 고립된 상태였습니다.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신라는 **당나라(중국)**와 손을 잡고,백제와 고구려를 함께 정벌하기로 약속합니다.📌 백제와 고구려 멸망660년: 신라-당 연합군, 백제 멸망668년: 고구려도 멸망하며 삼국 시대 종료하지만 당나라는 한반도를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드러냅니다.신라..

(역사)함께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린 두 나라, 왜 싸우게 되었을까?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 이야기신라와 당나라는 7세기 중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해 손을 잡고 나당동맹을 체결했습니다.하지만 통일이 가까워질수록 두 나라는 점점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며,결국에는 적에서 동맹, 다시 적으로 변하는 전쟁,바로 **나당전쟁(신라–당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오늘은 이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1. 배경 – 왜 동맹이 깨졌는가?▪ 나당동맹의 출발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을 막기 위해중국의 당나라와 손을 잡고 군사 동맹을 체결합니다.이후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며한반도의 삼국은 사실상 사라지게 됩니다.▪ 당나라의 속셈당나라는 단순히 신라를 돕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뒤, 한반도 전..

(역사)백제의 최후

삼국시대, 백제는 문화와 예술, 외교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한반도 서남부의 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결국 멸망하고 말았죠. 오늘은 찬란했던 백제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과정부터 최후까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1. 멸망을 향해 가는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백제의 마지막 왕은 바로 의자왕(義慈王)입니다.재위 초에는 정치를 바로잡고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는 등 뛰어난 전략가로 활약했지만,후기로 갈수록 사치와 향락, 그리고 측근 중심의 권력 운영으로 인해 왕권이 약화됩니다.📌 의자왕 시기 백제 내부 상황:귀족들의 불만 증가정치적 혼란과 민심 이반국방 체계의 느슨함신라와 당나라의 견제 강화2. 백제를 노린 나당연합군의 침공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에 시달리면..

(역사)고구려의 최후

동북아를 지배하던 초강대국 고구려(高句麗).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을 수차례 막아내며 그 강성함을 과시했던 고구려는한민족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결국 668년,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고 맙니다. 그 마지막 전쟁의 과정은 외침뿐만 아니라 내부 분열까지 겹친 비극의 역사였습니다.오늘은 고구려가 망조의 길로 접어든 전조부터 최후까지 살펴보겠습니다.1. 전조 – 삼국의 불안한 외교 판도7세기 중반, 삼국의 정세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었습니다.고구려: 연개소문의 철권 통치 아래 외세를 견제했지만, 내부는 불안백제: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압박신라: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당나라와 손잡고 나당 동맹 체결➡ 고구려는 사실상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에..

(역사)원삼국시대를 종결하는 나당 동맹의 결성

나당 동맹(羅唐同盟)은 신라와 중국 당나라가 맺은 군사・외교 동맹으로, 이 동맹은 이후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며 삼국 통일의 핵심 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 동맹은 단순한 우정이나 교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한 이해관계와 절박함 속에서 맺어진 역사적 타협이며, 각자 국익의 기반한 동맹이었습니다. 오늘은 나당 동맹이 왜 생겼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성되었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1. 7세기 한반도 정세 – 삼국의 팽팽한 긴장7세기 초반, 고구려・백제・신라는 서로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고구려: 수・당의 침입을 막으며 북방의 강자로 군림백제: 근초고왕 이후 다시 부흥하며 한강 유역을 위협신라: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였지만, 점차 체제를 정비하고 성장 중특히, 고구려와 백제가 협력..

(역사)백제와 왜구, 적인가 동맹인가?

숨겨진 해상 전쟁의 이야기삼국시대의 백제는 동아시아에서 해상 교역과 외교의 강자로 활약한 나라였습니다.그만큼 **일본(왜, 倭)**과의 관계도 깊었고, 때로는 협력 관계에 있었지만또 때로는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백제와 왜구 간의 전쟁과 관계,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역사적 맥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1. 왜구란 누구인가?왜구는 보통 일본 열도에서 출몰한 해적 무리를 의미합니다.이들은 주로 한반도와 중국 해안 지역을 약탈했고,특히 해양 교역이 활발했던 삼국 시대 후반~통일신라 전기,그리고 고려, 조선 초기까지도 자주 등장합니다.하지만 삼국시대 초중반에는 아직 ‘왜구’라는 명확한 개념보다,왜(倭)의 정규 병력 또는 부족 세력과의 충돌이 더 많았다고..

(역사)원삼국시대 핵인싸, 백제의 멸망

찬란했던 왕국의 마지막 이야기한반도의 삼국시대, 백제는 문화와 외교의 중심지로고구려와 신라에 버금가는 강력한 고대 왕국이었습니다.한강 유역을 기반으로 발전한 백제는한때 중국, 일본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해상 제국의 위상을 누리기도 했습니다.하지만 660년, 백제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에 무너지고 맙니다.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백제 멸망의 원인을 내부와 외부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1. 백제의 전성기와 쇠퇴의 시작백제는 근초고왕(4세기) 시절에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한반도 중부와 서남부를 장악하며 해상 교역을 주도했죠.하지만 고구려의 **장수왕에게 한성(서울)**을 빼앗기고,수도를 공주 → 사비(부여)로 옮기면서 국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이후 백제는 문화와 외교에서 강점을 보이며 ..

(역사)원삼국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고구려 왜 멸망했을까?

고구려는 원삼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한 강대한 국가중 하나였고 가장 광할한 영토를 가진 국가였으나, 결국 원삼국시대에서 패권을 이루지 못하고 멸망하였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역사가 깊고 영토가 더 많았던 고구려, 도대체 왜 멸망하였을까요?1. 고구려의 최전성기에서 멸망까지고구려는 5세기 장수왕 시대에 한강 유역을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며 최전성기를 맞이합니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부와 외부에서 점차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죠.백제는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했고신라는 당나라와 손을 잡아 삼국 통일을 노렸으며고구려는 북방의 말갈, 돌궐, 그리고 당나라와의 긴장 속에 있었습니다2. 내부의 불안정 – 연개소문과 왕권 약화고구려 말기, 연개소문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합니다.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

(역사)제주도의 옛 국가 '탐라국'

제주도는 지금은 인기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역사 속에서는 독립적인 해양 왕국, 탐라국으로 존재했습니다.탐라국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한반도 역사에 편입되었을까요? 오늘은 탐라국 고대 섬나라의 기원과 특징,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따라가봅니다.1. 탐라국은 어떤 나라였을까?탐라국(耽羅國)은 지금의 제주도에 존재했던 독립된 부족국가입니다.한반도의 **삼한(마한, 진한, 변한)**과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지만,해양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물을 주고받은 흔적이 보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탐라국은 기원전부터 존재한 독립 왕국으로 여겨지며,원삼국시대에도 고유의 정치·사회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2. 탐라국의 건국 신화탐라국에는 매우 독특한 건국 신화가 전해집니다.『탐라기년』과 『세종실록지리지』 등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