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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는 문화와 예술, 외교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한반도 서남부의 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결국 멸망하고 말았죠.
오늘은 찬란했던 백제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 최후의 순간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1. 멸망을 향해 가는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
백제의 마지막 왕은 바로 **의자왕(義慈王)**입니다.
재위 초에는 정치를 바로잡고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는 등 뛰어난 전략가로 활약했지만,
후기로 갈수록 사치와 향락, 그리고 측근 중심의 권력 운영으로 인해 왕권이 약화됩니다.
📌 의자왕 시기 백제 내부 상황:
- 귀족들의 불만 증가
- 정치적 혼란과 민심 이반
- 국방 체계의 느슨함
- 신라와 당나라의 견제 강화
2. 백제를 노린 나당연합군의 침공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에 시달리면서 **당나라와 동맹(나당동맹)**을 맺습니다.
당시 당 고종과 **신라의 김춘추(후일 태종무열왕)**는
백제를 공동으로 정벌하기로 결의합니다.
- 660년,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은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백제로 진군
- 동시에 신라 김유신도 5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 남쪽을 공격
백제는 두 나라의 협공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합니다.
3. 황산벌 전투 – 마지막 명장의 최후
백제의 명장 계백 장군은 5천 명의 군사로 신라 5만 대군을 막기 위해
**황산벌(현재의 논산 지역)**에서 결사항전을 벌입니다.
- 계백은 출전 전,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싸움터로 향했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로
죽음을 각오한 충신이었습니다. - 네 차례나 신라군을 격퇴했지만, 결국 수적 열세로 전사
📌 황산벌 전투는 백제의 군사적 저항이 사실상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4. 사비성 함락과 백제의 멸망 (660년)
황산벌이 무너진 후, **사비성(지금의 부여)**도 함락됩니다.
의자왕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닫고 항복을 선언합니다.
- 의자왕과 왕자들은 포로로 당나라에 끌려감
- 백제는 공식적으로 멸망
- 678년까지 이어지는 백제 부흥 운동이 시작되지만 결국 실패
5. 백제의 부흥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
멸망 이후에도 백제의 정신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 복신과 도침, 그리고 부여풍
- 백제 유민들은 복신, 도침, 그리고 일본에서 귀국한 왕자 부여풍을 중심으로
백제 부흥군을 조직 - 주류성을 중심으로 저항을 이어가지만
663년 백강 전투에서 신라-당 연합군에 패배하며 부흥 운동은 종결됩니다.
6. 백제 멸망의 원인
내부 원인 | 왕권 약화, 귀족 분열, 민심 이탈, 부패한 정치 |
외부 원인 | 신라-당나라 연합군의 강력한 공격, 고구려와의 협력 실패 |
전략적 실패 | 방어 태세 미흡, 수도 사비성의 함락 속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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