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55

(역사)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

한반도는 신라의 오랜 통일 이후 다시 혼란에 빠지며 후삼국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기, 궁예의 후고구려, 견훤의 후백제, 그리고 남은 신라까지, 세 나라가 서로 대립하며 한반도는 전쟁과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왕건이며, 그는 뛰어난 정치력과 외교 전략으로 통일의 길을 열었습니다.이번 글에서는 고려가 어떻게 후삼국을 통일했는지, 그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1. 고려의 건국 – 후고구려를 계승하다 (918년)후삼국의 시작은 신라의 쇠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방 호족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고, 이 틈을 타 궁예는 후고구려(나중의 태봉)를 세웁니다. 그러나 궁예의 폭정은 결국 부하들의 반란을 초래했고, 그 중심에 있던 왕건이 918년 고려를 세우며..

(역사)돌궐과 고려 유구한 역사

우리가 흔히 배우는 고려의 외교 관계는 주로 송, 거란, 여진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유목 제국 ‘돌궐’과 고려 사이에도 간접적인 관계와 역사적 접점이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돌궐이라는 제국의 개요와 고려와의 관계를 살펴보며, 한반도와 중앙아시아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었는지 알아봅니다.돌궐이란 어떤 나라인가?돌궐은 6세기 중엽 중앙아시아에 등장한 튀르크계 유목 민족의 제국으로, ‘고돌궐’과 ‘후돌궐’로 나누어집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몽골 고원에서 서쪽으로는 카스피 해 인근까지 세력을 넓히며 실크로드를 장악한 강력한 유목 제국이었습니다.이들의 언어는 고대 튀르크어 계열이며, 특히 오르혼 비문은 돌궐의 역사와 문화, 왕조의 위엄을 생생히 보여주는 중요한 ..

(역사)이름부터 왕이 들어간 왕건의 일대기

혼란의 후삼국 시대, 수많은 영웅들이 각자의 깃발을 들고 나라를 세웠지만, 그 끝을 장식한 승자는 바로 **왕건(王建)**이었습니다. 고려의 건국자인 그는 바다를 누비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결국 통일 국가 고려를 세우며 한반도의 새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왕건의 출생부터 고려 건국까지의 여정을 흥미롭게 따라가 봅니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왕건왕건은 877년, 지금의 개성(송악)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왕륭(왕융)**은 당시 송악 지역에서 활약하던 부유한 해상 무역 상인이자 지역 호족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씨 부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왕건은 어릴 때부터 바다와 무역에 익숙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됩니다.이러한 배경은 훗날 그가 해상 전략과 경제에 밝은 통치자로 성장하는..

(역사)민초에서 왕까지 견훤의 역사

삼국시대 이후 혼란기에 다시 등장한 후삼국 시대는 궁예, 견훤, 왕건이라는 세 인물이 주도한 시대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견훤(甄萱)**은 가장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히는데요, 미천한 농민 출신에서 후백제의 왕으로까지 올라간 그의 인생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견훤의 일생과 그의 정치, 그리고 역사적 평가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농민에서 장수가 되기까지견훤은 867년경 경상도 상주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확한 출신 성분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료는 그가 평민 또는 농민 출신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사적 재능과 지도력으로 신라의 지방군에서 빠르게 성장했고, 결국 장군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후백제의 건국당시 신라는 왕권이 약화되고 지방 호족들의 ..

(역사) 후고구려의 왕 궁예 그는 누구였을까?

고려의 전신인 태봉(泰封), 또는 후고구려를 세운 인물 **궁예(弓裔)**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뛰어난 지도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광기에 휩싸여 몰락한 비극적인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궁예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가 남긴 역사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출신과 초기 생애궁예는 869년경, 신라 왕족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어린 시절 한쪽 눈이 실명된 탓에 불길한 인물로 여겨져 왕족의 자리에서 쫓겨났고, 이후 사찰에서 자라며 불교에 심취하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왕이 된 이후에도 ‘미륵불’을 자처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후고구려의 건국9세기 말, 신라는 정치적 혼란과 농민 봉기로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었습니다...

(역사)한반도, 다시 삼국으로 나뉘다.

통일신라(676~935)는 삼국을 통일한 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9세기 후반부터 왕권 약화와 귀족의 분열, 농민 봉기와 지방 호족의 대두로 인해 국가 전체가 점점 무너져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신라는 한반도 전체를 통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그 틈을 타 새로운 지역 세력들이 각기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며후고구려(태봉),후백제,신라의 후삼국 시대가 시작됩니다.1. 통일신라의 붕괴 – 후삼국의 서막신라는 오랜 세월 동안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했지만,9세기 말이 되자 지방 호족 세력이 급속히 성장합니다.농민 반란(대표적으로 889년 원종과 애노의 난)왕권 약화와 관료 정치 붕괴왜구의 침입과 외교력 상실📌 이 혼란을 틈타, 지방 유력자들은 자신만의 무력과 행정조직을 갖추고 독립 세력화하게 됩니다.2. ..

(역사)찬란한 역사를 지닌 신라 그 불빛이 꺼지다

676년,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끈 신라는한반도 남부 대부분을 장악하며 삼국 통일의 주역이 됩니다.이후 약 200년간 문화・예술・불교・과학 등다양한 분야에서 황금기를 누리게 되죠.하지만 그 영광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9세기 후반부터 통일신라는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그 이유는 단지 외부 침입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1. 골품제도의 한계 – 신분 제도가 가른 희망신라의 골품제는 왕족부터 평민까지 출신에 따라 신분과 관직을 제한한 제도입니다.초기에는 왕권 안정에 기여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계급 간 갈등과 불만이 커졌습니다.특히 진골 귀족 외에는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없었고,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사회적으로 억눌리며 정치 발전이 멈추게 됩니다.결과적으로, 청년층과 중하층 귀족층이 점차 이탈하거나 반발하게..

(역사) 발해와 통일신라의 전쟁

서로 다른 통일의 꿈이 충돌한 전쟁 이야기676년, 신라는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을 통일하며남한 지역 대부분을 아우르는 ‘통일신라’를 건국합니다.한편 698년, 북쪽 만주 지역에서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세운 ‘발해’**가 등장합니다.이 두 나라는 한민족의 뿌리를 공유했지만,서로 다른 방식의 국가 운영과 영토 인식 차이로 인해 긴장을 겪게 되죠.결국 두 나라는 군사적으로 충돌하며 국경을 둘러싼 분쟁과 전쟁을 이어가게 됩니다.1. 전쟁의 원인 – 한반도 북방의 주인은 누구인가?▪ 통일신라의 시선신라는 고구려・백제・신라를 포함하는 ‘한민족 전체의 통일’을 꿈꿨습니다.따라서 북쪽에서 새롭게 등장한 발해를 ‘고구려의 후계국’이 아닌, 반란 세력 또는 이질 국가로 인식했죠.▪ 발해의 입장발해는 고구려를..

(역사)고구려의 꿈을 다시 세우다, 발해의 건국 이야기

668년,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의 협공으로 무너집니다.하지만 고구려는 단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30년 뒤인 698년, 만주 땅에서 **고구려의 후예 대조영(大祚榮)**이**발해(渤海)**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며 **고구려의 정신과 문화를 다시 일으켜 세우죠.이것은 단순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 아닌, 고구려 부흥운동의 결정판이었습니다.오늘은 발해가 어떻게 건국되었는지,그 과정과 의미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1. 고구려 멸망과 유민의 분산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고구려 유민들은 각지로 흩어졌습니다.일부는 당나라로 끌려가 포로가 되었고,일부는 신라로 이주했으며,상당수는 만주와 연해주 지역으로 피신, 독립적인 삶을 이어가려 했습니다.이 중에서 고구려 귀족 출신인 대조영은당에 복속하지..

(역사)통일신라가 삼국 통일 후 가장 먼저 시행한 내부 정책

676년,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고구려·백제의 옛 영토 대부분을 장악하며 사실상의 한반도 통일을 달성합니다.이제는 전쟁이 아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죠.그렇다면, 통일을 이룬 신라가 가장 먼저 시행한 주요 내부 정책은 무엇이었을까요?그 핵심은 바로 지방 행정 통합과 민심 안정을 위한 제도 정비였습니다.1. 9주 5소경 체제의 정비통일 직후, 신라는 기존의 삼국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합하고 관리하기 위해가장 먼저 행정 구역 개편에 착수합니다.📌 9주(州) 제도신라는 전국을 **9개의 주(지방 행정 단위)**로 나누고,각 주에 **총관(후에 도독으로 바뀜)**을 파견하여 중앙의 통치를 강화합니다.이 9주는 신라 본토 + 백제 + 고구려 옛 땅을 포괄합니다.대표 주지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