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sense History(역사 공부)

(역사)고구려의 꿈을 다시 세우다, 발해의 건국 이야기

upsense 2025. 4. 13. 21:00

668년,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의 협공으로 무너집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단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30년 뒤인 698년, 만주 땅에서 **고구려의 후예 대조영(大祚榮)**이
**발해(渤海)**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며 **고구려의 정신과 문화를 다시 일으켜 세우죠.
이것은 단순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 아닌, 고구려 부흥운동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오늘은 발해가 어떻게 건국되었는지,
그 과정과 의미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고구려 멸망과 유민의 분산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 유민들은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 일부는 당나라로 끌려가 포로가 되었고,
  • 일부는 신라로 이주했으며,
  • 상당수는 만주와 연해주 지역으로 피신, 독립적인 삶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이 중에서 고구려 귀족 출신인 대조영
당에 복속하지 않고, 새로운 국가를 꿈꾸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2. 대조영의 등장과 초기 저항

대조영은 고구려의 장수 출신 혹은 귀족 출신으로 추정되며,
발해의 건국자이자 **초대 왕(고왕)**입니다.

  • 그는 당나라의 지배에 반대하던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靺鞨, 만주 지역 토착민족) 세력을 규합합니다.
  • 698년, 동모산(현 중국 지린성)에서 군대를 일으켜
    당나라의 지방 세력인 **무장 고선지(高仙芝)**와 충돌하게 됩니다.

📌 이 전투, 천문령 전투는 발해 건국의 출발점이 되는 역사적 대승이었습니다.


3. 발해 건국 – 698년

천문령 전투 승리 이후,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바탕으로 독립 국가를 선포합니다.

  • 국호는 처음에 진(震) 또는 **진국(震國)**이라고 불렸으며,
  • 이후 **발해(渤海)**로 국호를 정식 채택합니다.

발해는 만주, 연해주, 한반도 북부 지역을 아우르며
고구려보다도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한 국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4. 발해의 정치 기반과 체제

발해는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중국 당나라의 문물을 적극 수용해 선진적인 국가 체제를 만들어갑니다.

  • 5경 15부 62주의 행정 체계
  • 중앙과 지방의 관리를 나누고, 문・무 관리 제도 정비
  • 불교와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사상 수용
  • 신라와도 적극적으로 교류, 일본・당나라와도 외교 수립

이처럼 발해는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받되,
새로운 동북아시아의 문명 국가로 발전해갔습니다.


5. 발해 건국의 역사적 의의


고구려 부흥 고구려 멸망 이후 30년 만에 부흥의 뜻을 실현
민족 융합 고구려 유민 + 말갈족의 통합으로 새 국가 형성
자주 독립국가 당나라와 신라의 영향권 밖에서 자주적으로 성장
문화 교류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서 적극적인 외교 활동 전개

 발해는 이후 “해동성국(海東盛國)”,
동쪽 바다의 번성한 나라라는 칭호를 들을 만큼 강력한 문명국으로 발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