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8년,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의 협공으로 무너집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단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30년 뒤인 698년, 만주 땅에서 **고구려의 후예 대조영(大祚榮)**이
**발해(渤海)**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며 **고구려의 정신과 문화를 다시 일으켜 세우죠.
이것은 단순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 아닌, 고구려 부흥운동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오늘은 발해가 어떻게 건국되었는지,
그 과정과 의미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고구려 멸망과 유민의 분산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고구려 유민들은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 일부는 당나라로 끌려가 포로가 되었고,
- 일부는 신라로 이주했으며,
- 상당수는 만주와 연해주 지역으로 피신, 독립적인 삶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이 중에서 고구려 귀족 출신인 대조영은
당에 복속하지 않고, 새로운 국가를 꿈꾸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2. 대조영의 등장과 초기 저항
대조영은 고구려의 장수 출신 혹은 귀족 출신으로 추정되며,
발해의 건국자이자 **초대 왕(고왕)**입니다.
- 그는 당나라의 지배에 반대하던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靺鞨, 만주 지역 토착민족) 세력을 규합합니다. - 698년, 동모산(현 중국 지린성)에서 군대를 일으켜
당나라의 지방 세력인 **무장 고선지(高仙芝)**와 충돌하게 됩니다.
📌 이 전투, 천문령 전투는 발해 건국의 출발점이 되는 역사적 대승이었습니다.
3. 발해 건국 – 698년
천문령 전투 승리 이후,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바탕으로 독립 국가를 선포합니다.
- 국호는 처음에 진(震) 또는 **진국(震國)**이라고 불렸으며,
- 이후 **발해(渤海)**로 국호를 정식 채택합니다.
발해는 만주, 연해주, 한반도 북부 지역을 아우르며
고구려보다도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한 국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4. 발해의 정치 기반과 체제
발해는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중국 당나라의 문물을 적극 수용해 선진적인 국가 체제를 만들어갑니다.
- 5경 15부 62주의 행정 체계
- 중앙과 지방의 관리를 나누고, 문・무 관리 제도 정비
- 불교와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사상 수용
- 신라와도 적극적으로 교류, 일본・당나라와도 외교 수립
이처럼 발해는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받되,
새로운 동북아시아의 문명 국가로 발전해갔습니다.
5. 발해 건국의 역사적 의의
고구려 부흥 | 고구려 멸망 이후 30년 만에 부흥의 뜻을 실현 |
민족 융합 | 고구려 유민 + 말갈족의 통합으로 새 국가 형성 |
자주 독립국가 | 당나라와 신라의 영향권 밖에서 자주적으로 성장 |
문화 교류 |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서 적극적인 외교 활동 전개 |
발해는 이후 “해동성국(海東盛國)”,
즉 동쪽 바다의 번성한 나라라는 칭호를 들을 만큼 강력한 문명국으로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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