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sense History(역사 공부)

(역사)후삼국의 종지부 일리천 전투

upsense 2025. 4. 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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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6년, 한반도 남부의 들판에서 역사적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바로 **고려와 후백제가 벌인 '일리천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후삼국 시대를 종식시키고 고려의 완전한 통일을 이루어낸 결정적 사건이었으며, 수많은 전략과 인간 드라마가 얽힌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일리천 전투의 배경, 전개, 그리고 결과를 단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전투의 배경 – 가족의 분열이 전쟁의 도화선이 되다

후백제의 왕 견훤은 뛰어난 군사 지도자였지만, 말년에 장남 신검과의 갈등이 심화되며 내부 분열을 겪게 됩니다. 결국 935년, 신검은 아버지 견훤을 유폐시키고 정권을 강제로 탈취합니다.

이에 분노한 견훤은 유폐된 곳에서 탈출해 고려 왕건에게 투항하며 “아들을 응징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왕건은 이 기회를 후백제를 병합할 최적의 타이밍으로 보고 대규모 군사 작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 전투의 전개 – 고려와 후백제, 운명을 건 최후의 대결

일리천 전투는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벌어졌습니다. 이곳은 낙동강 유역의 전략적 요충지로, 후백제가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기도 했습니다.

  • 왕건은 견훤과 후백제 유민, 고려 정규군 등 연합군을 이끌고 남하합니다.
  • 후백제의 신검은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방어선 구축에 나섰지만, 내부 동요와 견훤 세력의 이탈로 인해 군의 결속력이 약해졌습니다. 특히 상대편의 자신의 국왕이였던 견훤이 있었으니 혼돈은 말도 아니였지요.
  • 군사규모는 비슷했으나, 상대편에 견훤이 그리고 견훤의 사위 박영규는 이미 배반을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승패는 엇갈린것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 특히 견훤은 후백제 군 내부의 심리를 잘 꿰뚫고 있었고, 고려군은 그 지혜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포위 및 기습 전략을 펼쳤습니다.


🏁 전투의 결과 – 고려의 완전한 승리와 후삼국의 종식

  • 신검은 끝내 전세를 뒤집지 못하고 항복합니다.
  • 왕건은 신검과 그의 일가를 살해하지 않고 포로로 대우하며 포용의 정치를 실현합니다.
  • 후백제는 공식적으로 멸망, 고려는 한반도 대부분을 통일하며 후삼국 시대를 마무리짓습니다.

이 전투로 인해 고려는 정치적 정통성과 군사적 우위를 동시에 인정받게 되었고, 왕건은 고려 태조로서 확고한 지위를 굳히게 됩니다.


📌 역사적 의의

  • 한반도 역사상 세 번째 통일 국가의 완성
  • 군사력뿐 아니라 정치적 포용과 전략의 승리
  • 유혈을 최소화한 통일로 비교적 안정된 고려 초기를 맞이함

일리천 전투는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전략, 심리전, 정치적 판단이 모두 맞물린 통합의 결정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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